감은사지 3층 석탑

감은사지(感恩寺址)

: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의 호국충정에 감사하는 의미로 감은사를 지음

(현재는 절 터와 탑만 남아있기에 감은사지라고 불림)

 


 

신라 문무왕은 삼국통일 이후에 나라를

더욱 견고하고 굳게 지키기 위해 감은사를 짓기 시작한다.

완성을 다하지 못하고 죽으나

그의 아들인 신문왕이 이를 모두 완공한다.

 

 

문무왕은 죽기 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

말을 남겼다.

 

"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어 나라를 지킬 것이다."

 

 

바로 이 문무왕의 무덤이

독특한 형식의 수중왕릉인

문무대왕릉이다. 

 

발견 초기 학자들은 네 개의 바위 사이에

작은 틈이 있는 형태의 수증릉을 보고

가운데 빈부분의 아래에 수증릉이

있을것이라고 예측했으나,

 

정확한 근거가 나오지 않았고

허묘인 것으로 확인된다.

 

연합이매진 [감은사지 앞 연못]

실제로 문무왕의 유언처럼 그가 용이 되어

바다와 오갈 수 있는 연못이 감은사지에

조성이 되어 있다.

 

현재는 메말라 있지만, 바로 앞의 바다와

수로로 연결되는 형태의 연못으로서

굉장히 흥미로운 역사라고 생각된다.

 

사리장 엄구 곽(왼) / 사리장 엄구(오)

당시 감은사지의 쌍탑을 해체하는 중

둘 중 하나의 탑에 사리가 있다는 사실에

두근댔던 것이 생각이 난다.

 

굉장히 정교하면서도 화려하게

장식된 사리장엄구를 볼 수 있는데,

신라의 금속공예가 굉장히 발달이 되었었구나

하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다.

 


 

경주인으로써 어렸을 때

보고 듣고 자랐던 역사에 대해서

굉장히 흥미롭게 느꼈던 추억이

새록새록 떠오른다.

 

 

수십년 후에, 수백년, 수천년 후에

우리의 발자취를 누군가가

찾아온다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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